Essay
입맛 매국노 : 찌개 Hater 한국인
남들이 다 좋다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외롭다. 특히 치킨과 떡볶이를 싫어하기라도 하면 후폭풍이 두려워진다. 싫어하는 음식이 뭐냐고 누가 안 물어보면 좋겠다. 김연아, 손흥민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된 것처럼 민망해진다. 싫어하는 게 많으면 성격이 예민할 거라는 편견 때문에 싫어하는 음식의 가짓수도 줄이고, 부정적으로 보일까 봐 주로 숨어서 활동하는 '음식 안티'들이 있다. ('떡볶이 Hater' 황교익 씨는 그런 점에서 독특한 존재다)
음식 호불호를 나누는 게시물엔 언제나 댓글이 만선이다. ‘민초파/부먹 꺼져’ 등에 222, 333 등 숫자를 달고 논다. 그렇다. 다들 싫어하는 음식을 마음껏 말하고픈 욕망이 있다! 오이가 싫다는 취향 하나만으로 뭉쳐 카페를 만드는 경우를 보면, 음식을 다 같이 싫어하는 건 안도감과 연대감을 주는 모양이다. 나만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다수에 속한다는 위안.
나는 사실 한식을 안 좋아하는 ‘입맛 매국노’다. 특히 맵고 짠 한국인의 소울푸드, ‘찌개’가… (지금 약간 용기가 필요하다) 싫다. 아재 입맛의 대척점에 있는 나는 한국에서 이해받기 힘든 취향을 가졌다. 미국인으로서 부대찌개를 사랑해서 ‘대한미국놈’이 된 사람도 있는데 나는 뭐지? 왜 찌개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일단 반복되는 걸 싫어하는 나는 어릴 때부터 한국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에 이미 밥과 반찬, 찌개 구성이 지겨운 상태였다.
대학에 가서는 한창 양푼에 넘치게 끓여대는 김치찌개가 유행이었다. 학교 동아리 뒤풀이 때도 꼭 그 식당에 갔고, 술집에 갈 때도 애들은 꼭 그런 걸 시켰다. 김치찌개는 짜면서도 밍밍한 게, 희한하고 성의 없는 맛이었다. 거기엔 김치와 돼지고기가 일부 들어있고 나머지는 맹물과 우리들의 숟가락에 딸려 들어온 아밀라아제로 구성된 것 같았다. 술 두세 병을 시킬 때까지 푹 졸여야 그나마 괜찮아졌다. 괜찮은 순간도 찰나, 좀만 있으면 또 염전만큼 짠맛으로 금방 변했다. 그 변덕성이 나는 싫었다.
많은 친구들이 소주와 찌개가 잘 어울린다며 신나게 들이켰지만, 나는 그 마리아주의 참맛을 몰랐다. 굳이 알 필요도 못 느꼈다. 그저 김치 향이 나는 물이 출시된다면 그것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찌개는 맵고 싱거운 동시에 짜고 펄펄 끓어서 ‘화’가 극대화되는 음식, 너무 강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찌개를 파는 집들은 왜 이렇게 시끌벅적한지. 찌개를 먹다 보면 다들 목소리가 커지나? 신성한 식사 시간에 내 고막은 눈을 감고 인내해야 했다.
김치찌개에 결정적으로 질려버린 건 직장 A에서의 일이다. 그 시절 동료 중에 김치찌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다들 호불호가 없고 둥글둥글한 성격이었던 탓에 유일하게 ‘호’를 강하게 표시했던 그 사람의 의견에 자주 따르게 됐다.
“오늘 점심 뭐 먹지?”
“아, ㅇㅇ가 김치찌개 좋아하잖아.”
“그럼 그거 먹자.”
이런 흐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1주일에 2~3번씩 김치찌개만 죽어라 조지게 됐다. 몇 달쯤 그러고 나니 다들 김치찌개에 넉다운이 되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얼마 전, 직장 A의 동료 한 사람을 만났다. 그녀와 나는 오랜만에 만나도 김치찌개 욕으로 하나가 되었다.
“어우, 그 찌개집은 몇 년 동안 안 먹어도 입 안에서 그 맛을 생성해 낼 정도야.”
“생각만 해도 토나온다.”
공감하면서 우린 갑자기 웃퍼졌다. 왜 그렇게 참고 살았는지… 내 취향을 주장하지 못했는지…
직장 B에 가서도 내 취향은 여전했다. 모두들 점심시간마다 쌓인 화를 풀어보려고 이열치열을 찾아 헤매듯이 찌개를 먹는 것 같았다. 뜨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 영혼을 위로해 준다고. 순대국, 순두부찌개, 해장국, 부대찌개는 한국 직장인의 소울푸드 같았다. 무난하게 모두가 좋아할 음식, 안전한 선택. 점심시간마다 동료들은 찌개를 외쳤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오늘은 국물 먹을까?”, “부대찌개에 라면 넣어 먹을까?”란 제안이 잦았다. (“괜찮지?”라고 묻지도 않는다.) 직장 주변에는 거의 한식집이 대부분이기도 했고.
나는 무해하고 미지근한 음식들이 좋았는데. 하지만 막내급이었던 내겐 메뉴 선정권이 없었기에 무기력하게 따라갔다. 그러고는 관찰했다. 상사들과 동료들의 먹는 모습을. 내가 안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자연히 거리감이 생겼다. 그걸 맛있게 먹는 사람에게도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며 그 옆에서 관찰할 수 있는 틈이 생겼다. 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나는 싫어한다는 사실이 멋쩍기도 했다. 아니 저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그 음식이 싫어진 건가?
동료들 앞에서 잘 먹는 척 연기하느라 찌개 Hater 기질은 더 심해졌다. 매운 찌개를 먹으면 속 안으로 화가 더 쌓였다. 먹고 나면 물배가 찬 느낌으로 더부룩하고 갈증이 생겼다. 직장에서의 나머지 시간은 더 고단하고 부글거렸다. 자꾸 안 좋아하는 메뉴를 억지로 먹는 스트레스도 한몫했다. 메뉴 제안권을 얻기 위해 승진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그전에 회사를 관뒀다. (맹세코 음식 때문에 관둔 건 아니다.) 내가 제안하고 싶었던 메뉴는 많았었는데. 스페인, 베트남, 이탈리안, 중식, 멕시칸 등 아무튼 한국 음식 말고.
물론 한국음식은 스펙트럼이 넓고 훌륭하지만, 개인적으로 맵고 짠 종류가 별로다. 산뜻한 느낌이 덜하다. 한식의 맛보다도 땀을 흘리며 시끌벅적하게 다 같이 반찬을 나누어 먹는 한식집의 분위기가 별로인 것도 같다. 이렇게 찌개에 질린 나는 입맛 매국노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나중에 몇 년 정도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에 가서 내 몸에 쌓인 자극적인 음식들을 해독하며 살고 싶다. 장수 마을로 가면 더 좋겠다. 그럼 어느 순간 찌개가 그리운 날도 오긴 하겠지.
*TMI) 한국 국물이라도 담백한 종류는 좋아한다. 미역국, 무국, 삼계탕, 추어탕, 평양냉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