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에어비앤비 숙소에 누군가 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내향적이고 개인 시간을 중시한다. 각자의 공간이 필요한 성격 탓에 신혼집도 방 3개 조건으로 골랐다. 부부가 각방을 쓴다고 하면 주위에서 왈가왈부했다. 지인들이나 전 회사 동료들은 “신혼인데 각방은 좀…” 하며 말끝을 흐렸다. 어르신들은 ‘그러면 사이가 소원해진다’ 했고, 2~30대 또래들도 우릴 신기하게 보았다. 우리가 만족한다는데 웬 오지랖이람, 속으로 코웃음치고는 각자의 방을 취향대로 꾸렸다.
각방 쓰는 삶은 만족스러웠지만 1년에 한 번쯤은 완전히 혼자였던 삶이 그리웠다. 아무래도 자취하던 시절의 자유도와는 달랐으니까. 후줄근하게 입거나 옷을 벗고 집안을 활보하던 시절, 마음대로 노래를 부르고 욕도 하고 혼자 야한 것도 보던 시절. 아무리 잘 맞는 동거인이라 해도 같은 공간에 있다면 완전한 자유란 없다. 그래, 다음 달에 퇴사하기로 한 참에 혼자 외박하면 리프레쉬가 되겠다. 좀 혼자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프리랜서로 살 계획도 세우고.
에어비앤비 어플을 둘러봤다. 간단히 1박만 하기엔 같은 서울이 좋겠다. 홍대, 종로 쪽은 외국인들을 위한 숙소가 많지만 좀 비쌌다. 고심 끝에 한강진에 있는 숙소를 1박 예약했다. 6만 원 대의 여성 전용 싱글룸이었다. 떠나기 3일 전쯤 남편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나 혼자 외박하고 올게. 남편은 의아해했다.
“흥, 나 버리고 바람피우러 가나? (우리끼리 자주 하는 농담이다.) 왜 나랑 안 가고 혼자 가지?”
“혼자 생각 정리 좀 하게. 퇴사 문제도 있고 머리가 복잡해서. 너도 다음에 외박해.”
“난 필요 없어.”
남편은 구시렁댔지만 수긍했다. 외박 날이 되자 잠옷과 노트만 단출하게 챙겨 한강진으로 떠났다. 캐리어 대신 에코백을 맨 외국인 관광객처럼, 도심을 생경한 눈으로 거닐어야지. 발걸음과 마음이 들떴다. 비행기 안 타고도 여행가는 기분이라니 이 얼마나 가격 대비 효율이 좋은가.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라서 ‘에어’(비행기)하게 가벼운 기분이었다. 한강진역에 내려 숙소로 가는 길. 각종 하이엔드 브랜드샵, LP바, 향수 샵, 포토 부스, 카페가 많은 ‘힙’한 동네였다. 쇼핑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그저 걸었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번화가에 위치한 빌라 3층이었다. 집주인이 보낸 메시지 속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었다. 집이 온통 흰색이었다. 거실에 흰색 테이블과 흰색 의자가 있고 정돈된 책장과 선반이 있었다. 방이 2개에 화장실이 있었다. 선반엔 향초, 디퓨저, 인센스 스틱들이 놓여있어 향에 조예가 있는 집주인 같았다. 열려있는 방에 들어가 에코백을 부려놓았다.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방처럼 침구와 책상, 전신 거울, 옷걸이, 시계만 있었다. 무균실같이 깨끗한 공간에서 나는 너무나, 완전히 혼자였다.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췄다. 올라가는 입꼬리와 환호성, 콧노래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에 억압받는 것도 아니면서 해방감이 들었다. 새것 같은 물건들과 누리는 새것 같은 자유. 싱글 침대의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쓸어보다가 커피를 마시러 몸을 일으켰다.
주말이라 카페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겨우 한 군데 들어가 딸기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다. 향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곳인지 향기 나는 핸드크림 샘플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숙소와 주인이 같은 걸까 상상하며 크림을 발랐다. 커피를 마시며 노트에 퇴사 후 계획 – 앞으로 인생 어떻게 살까? - 을 끄적이는데, 옆 테이블 남녀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가볍게 한탄하듯 화두를 던졌고 맞춤 맞게 내 귀에 닿았다.
“하… 인생 뭘까?”
남자의 답변은 지나치게 진지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그냥 사는 거지. 나처럼 철학과 종교 공부도 하고.”
거만한 말투를 견디기 힘들어서 아무 소리라도 내고 싶어졌다. 괜히 엉덩이를 고쳐 앉고 의자 끄는 소리도 살짝 냈다. 그들이 눈치 못 챌 정도로. 남자는 계속 말했다.
“우리가 살게 된 데엔 이유와 목적이 있을 거야. 그래서 신앙과 종교를 대부분 믿게 되지.”
그 말을 들어주는 저 여성도 이 순간 혼자만의 공간으로 가고 싶겠지. 생각의 흐름도 깨져버렸겠다,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저녁으론 혼자 먹기 좋은 카레를 선택했다. 맛은 평범했지만 속을 따뜻이 데워주었다. 뭔가 씹을 거리가 더 있으면 좋겠는데 금방 넘어가 버렸다. 사람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증폭돼서 들리고, 씹히지 않은 고독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30분 만에 식사를 마친 후, 숙소를 향해 걸었다. 거리에 혼자 다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완전히 혼자가 될 에어비앤비가 기대되는 동시에 고독해졌다. 막상 고독해지니 심심했다.
숙소에 와 주방 냉장고를 열었다. 생활감이 느껴지는 각종 식재료, 음료가 가득했다. 누가 여기에 매일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뭐지? 그런 안내 메모도 가이드도 전혀 없는데. 그러고 보니 맞은편 굳게 닫힌 방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어플에서 대충 봤던 숙소 리뷰를 다시 읽었다.
- 여성 전용 숙소라 편했어요! 주인 분이 옆 방에 계셨는데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좋았고요.
- 집주인이 조용하셔서 같이 쓰기 편했습니다. 거의 없으신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전체를 사용하는 숙소가 아닌, 집주인의 집에서 방 하나를 빌리는 거였다! 이걸 모르고 예약했다니, 어쩐지 방값이 싸다 했어… 공용 숙소라는 정보는 리뷰를 안 보면 알 수 없을 정도로 숨겨져 있었다. 손님 마중을 안 한 것이 의아했고 사람 소리가 들리지도 않았지만, 집주인이 지금 방에서 자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저녁 먹고 온 사이 들어왔을 수도.
집주인의 방은 화장실 옆에 있었다. 몇 번이나 그 방문에 귀를 대보았다. 뭔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결계가 걸린 것 같았다. “저기요~” 혹은 “계세요?”라고 말 걸거나 문을 두드리기엔 숙소 전체가 호수에 잠긴 듯 고요했다. 괜히 헛기침을 해봐도 적막은 깨지지 않았다. 집주인도 내가 말 거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이대로 서로 없는 척하는 게 숙소의 미덕, 무언의 규칙인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나는 인기척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있다는 가정이 생기자 급격히 불편해졌다. 내 방 안의 음악 소리를 줄이고 미지의 존재를 깨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실에 있는 책들 책장도 조심히 넘겼지만 스삭-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샤워를 하면서는 노래를 부르려다 말았다. 내 발소리가, 수도꼭지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찰박. 총총. 똑똑.
20대에 떠났던 1달의 유럽 여행 기간 대부분은 도미토리룸에 묵었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방문을 열 때면 조마조마했다. 나 때문에 여럿이 잠을 깰까봐, 불을 켜지 못한 채 뒤꿈치를 떼고 움직였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캐리어 짐을 풀고 다시 싸고 조용히 살살. 2층 침대에 올라갈 때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덜 나도록 살살. 2층 침대와 기숙사의 낭만은 깨끗이 사라졌었다. 지금도 외박의 낭만은 사라지고, 어떻게 살지 계획을 세우려 했던 다짐도 흩어지고 있었다. 혼자 있으려고 집을 떠나온 건데 이렇게 또 공용 공간을 쓰게 되다니.
서가에 있던 자기계발서 책을 방에서 읽는데 밖에서 삐걱 소리가 작게 들렸다(들린 듯했다). 문을 열고 거실을 내다보니 아무도 없고 사물들은 제자리에 있었다. 화장실에서 수챗구멍으로 꼴꼴- 물 빠지는 소리만 계속 들렸다. 집주인이 씻겨 내려가는 듯, 정령 같은 인기척이 신발장에도, 주방에도 깃든 것 같았다.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보려다 타이밍을 놓쳤다. 초침 소리에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1시.
이상하게 빛나 보이는 침구 위에 누웠다. 그러게, 막상 혼자 있을 때 하고 싶던 걸 못 해봤다. 욕도, 춤도, 별난 짓들도, 생각 정리도… 가상의 존재를 의식하며 하루를 보내느라 피곤해졌다. 왜 뭐가 자꾸 끼어들지? 저 사람은 화장실도 안 가나? 역시 아무도 없는 건가… 꿈속에서야 난 비로소 혼자였고 내 공간에 끼어드는 게 없었다.
다음날이 돼서 숙소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았다. 사실 알고는 있었지만 100% 확실해진 것이다. 오전 10시 체크아웃할 때까지 아무 인기척도 없었으니까. 나는 끝내 집주인을 보지 못했고 끝까지 그 문을 열지 못했다. 누가 있는지 문을 열어 확인하는 게, 뭐가 그렇게 두려웠을까? 그냥 문을 두드리면 알 수 있는데. 허탈하게 웃었다. 어쩌면 미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미루기 위해,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핑계처럼 미지의 존재를 상상한 건가. 에어비앤비 어플에서 리뷰를 남겨달라는 알림이 떴다. 다음엔 공용 숙소 아닌 곳에서 외박을 해봐야지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집주인의 방문을 흘겨봤다. 꼭 누가 있을 것 같단 말이지. 현관문을 여닫으니 집안에 머무르던 향이 코끝에 스치듯 불어왔다. 향기가 인기척으로 둔갑해서 착각을 일으킨 것 같기도 했다. 자유롭기보다 기묘한 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