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스위트파크의 몰락
‘강남 쪽 한 백화점에 초대형 디저트 편집숍이 들어선다.’
이 소식을 들은 순간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디즈니랜드가 한국에 생긴다는 소식이라도 들은 것처럼 거기서 뛰어놀고 싶어졌다. 그 편집숍의 이름은 말 그대로 ‘스위트 파크’. 전국 방방곡곡과 해외에서 긁어모은 유명 디저트 브랜드 40여 개가 입점하는, 1600평 규모의 테마 공간. 프랑스 파리의 빵집, 벨기에 초콜릿, 일본 파이 집이 몰려있다며 언론 홍보도 쏟아졌다. 과연 전국 디저트 팬들이 줄서서 오픈런하는 사진을 기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걸 안 가면? 미식가인 내가 아니지…”
‘핫한 스위트 파크, 드디어 가봤다.’ 제목의 블로그 후기들을 눌러보며 중얼거렸다. 오픈 초기는 피하고 나중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체감으론 최근 5년 이내 후식 문화가 급격히 는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걸 원하니까. 인스타그램의 발달로 포토제닉한 디저트들이 인기를 끌고 카페 ‘도장 깨기’, ‘빵지순례’를 하는 젊은 인구가 많아졌다. 꿀을 넣은 아이스크림, 탕후루, 크루키 (크루아상과 쿠키를 합친 한국식 창조 디저트)… 다음 유행은 뭘까?
나도 유행에 편승하는 사람 중 하나다. 시작은 6년 전쯤, 한창 사회초년생이었다. 당시 나는 영업 업무를 하며 스트레스를 단 것으로 풀었다. 팀의 또래 여자들 셋이서 업무 메신저를 자주 주고받았다. 특히 오후 3~4시쯤 한 명이 포문을 열었다.
- 졸리고 당 떨어지네요
- 편의점 고고?
우리는 회사 앞 편의점이나 스타벅스에 15분 정도 앉아서 아이스크림이나 단 음료, 롤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상사, 거래처와 회사 욕을 했다. 짧은 쉬는 시간만큼 디저트는 빠르게 녹아서 사라졌다. 피가 달아지니 계속 단 게 땡겼고, 1주에 한두 번씩 케이크, 까눌레, 에그 타르트 등 맛집을 찾아다녔다.
일이 몰려 스트레스받을 때나 유독 울적할 때면 꼭 디저트가 땡겼다. 그게 가장 싼 값으로 내 기분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디저트가 비싸봤자 밥보다는 싸다. 밥이 10,000원쯤 한다면 디저트는 7,000원쯤 하니까. 돈을 아끼기 위해 밥 대신 후식을 먹었다. 그 즉각적인 행복. 구름을 뜯어먹고, 신의 과일을 따 먹는 듯 미각 황홀경을 주었다. 당시 나는 그게 밥보다 내 정신건강에 더 좋다고 생각했다. 케이크의 한 종류인 티라미수(tirami su)란 이름 자체도 ‘나를 들어 올리다, 응원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이고, 그만큼 나는 디저트를 사랑했다.
물론 건강이 걱정돼서 끊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계절마다 제철 과일이 새로 나왔다. 파티쉐들은 경쟁하듯이 2월엔 딸기, 7월엔 망고, 9월엔 무화과 등을 활용해 여러 맛과 모양으로 조합해 냈다. 딸기와 루바브 잼을 곁들이고 무화과엔 디플로마트 크림을 올리고, 망고에 요거트크림을 섞고. 나는 계절감을 잘 느끼기 위해 디저트를 먹는 거였다. 집에 포장해 와서 커피와 함께 먹는 적도 많았다. 이 작은 예술 작품, 조형미의 극치. 빛나고 말랑한 형체에 처음 포크 질을 할 때 – 하얀 눈 위에 발을 내딛는 것처럼- 의 기분이 좋았다. 반을 가르면 속의 크림이 주룩 흐르고, 바삭한 타르트지가 빠개지며 형태가 무너지는 순간. 완성형의 것을 한번 망가뜨리고 나면 마음 놓고 포크 질을 해서 입에 넣을 수 있었다.
마침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그곳에 혼자 들렀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미로 같은 길을 따라 당도했다. 꿈꿔오던 나의 낙원, 달달한 왕국에. 삐까번쩍한 조명들이 여백도 없이 디저트들을 향해있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무슨 에르메스 스카프나 샤넬백처럼 보였다.
흥분을 가라앉히며 진열 부스들을 한 바퀴 쭉 돌았다. 무슨 무슨 브랜드들이 있나. 일부는 이미 가본 브랜드들이라 익숙했다. 부스들은 많지만 다닥다닥 밀집해 있다 보니 돌아보기에 좋았다. 오후 8시, 폐점이 1시간 남은 시간이었다. 손님들이 적어서 그랬는지, 이상하게 진한 쓸쓸함이 느껴졌다. 밝게 불을 켜놨지만 텅텅 빈 진열대들은 서커스나 공연이 끝난 무대 뒤편 같았다.
쭉 돌아보니 파는 품목이 비슷했다. 개별로 있을 땐 고유한 동네 가게들 같더니, 같은 공간에 모여 있으니 공장에서 찍어낸 것처럼 상업화, 획일화된 느낌이 강했다. 맞춤형 옷집에서 기성복 매장이 된 것 같았다. 거대한 초콜릿 틀 안에 섞여서 비슷한 모양과 맛이 된 것 같았다. 아직 난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진열대의 식품들이 왜 인형 장난감 같아 보이지? 매끈한 겉모습에 입맛이 떨어져 갔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고? 너무 아깝지.’ 하며 두 바퀴째 돌았다. 부스마다 한두 명씩 서 있는 직원들은 우물쭈물하는 손님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강남 물가가 반영된 것인지 비싼 브랜드만 모은 건지, 갑자기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일본에서 건너온 디저트는 하나에 17,000원이나 했다. 다른 집의 조각 케이크 하나 살까 했더니 13,000원이었다. 손이 떨려서 카드를 내밀 수가 없었다. 회사 다니던 상황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샀을 텐데. 달라진 건 동네에서 대기업으로 옮겨온 상점들인지, 대기업에서 퇴사한 내 마음인지 헷갈렸다. 백색 조명은 쨍하고 비인간적이어서 고민할 틈도 주지 않았다. 이 멋진 디저트들 앞에서 고민할 시간 없어요. 핫한 가게들 다 모았으니 마음껏 고르세요.
어느새 세 바퀴째 돌고 있는 나. 이제 점원들이 알아볼까 민망했다. ‘흐음…’ 괜히 도도하고 무심한 눈길로 걷다가 지쳐서 구움가게 부스 앞에 멈췄다. 3,000 원짜리 기본 마들렌 하나만 포장을 요청했다. 근처 간이 테이블에 앉아 그 조그만 걸 먹었다. 포장지 벗기는 손이 살짝 떨렸다. 휴, 당 떨어졌나. 디저트 팬인 내가 이 정도(마들렌)로 물러나다니, 시즈널 제품들을 참다니. 이런 내가 낯설고, 마들렌의 식감과 맛도 낯설었다. 속은 퍽퍽하고 겉면에 아이싱 부분은 너무 달았다. 잘게 뭉친 설탕 덩어리들이 입안에서 부서졌다. 반쯤 먹으니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았지만 관성적으로 끝까지 먹었다.
어떤 사람들은 SNS에 빈 접시를 찍어 올리곤 했다.
“빈 접시를 보면 아 이게 그렇게 맛있었구나 싶어 뿌듯하고 자랑하고 싶어져.”
나는 그걸 보며 어떤 뿌듯함도 느끼지 못했고 자괴감이 들었다. 빈 접시는 공허한 우주처럼 남아있고 부스러기 몇 톨만 뿌려져 있었다. 빈 접시에 내 실루엣이 비치는 게 싫어서 눈앞에서 빨리 치우곤 했다.
이제 디저트 세계관이 내 안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알았다. 알록달록 예쁘고 달고 상큼했던 그 세계는 폐장한 놀이공원 같이 돼버렸다. 바닐라 크림을 굳혀서 올린 돔 모양이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사삭. 까눌레 매표소는 문을 닫았고, 츄러스로 된 회전목마와 초콜렛 관람차는 삐걱거리며 적막감을 더했다. 과일 케이크 단원들은 과한 무대 화장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많이 흘려보내고 있었네. 깨달은 나는 눈을 돌렸다.
이제까진 단 걸로 대충 해결하며 넘어간 적이 많았다. 하루하루가 내 안에서 소화되지 않는데, 거기가 빈 공간인 줄 알고 자꾸 채워 넣었다. 2년 전부터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일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스트레스가 덜해지자 확실히 단 것도 덜 먹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씩 카페에서 후식을 시키지만, 욕심이 많이 잦아든 것을 느낀다. 그건 사랑이 식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딱히 상대 잘못이 없는데도 그냥 내 마음과 환경이 달라지고 열정은 식는다. 나이도 들고 해서 이젠 스위트파크에도 감흥이 없어진 걸까. 디저트에만? 아님 다른 모든 곳에서도 조금씩?
집에 와서 SNS를 넘겨보았다. 기분 탓인지 이제는 디저트 집이 많이 안 뜬다. 독서, 영화, 여행, 인물 이런 것들이 더 많이 뜬다. 알고리즘도 같이 스위트파크를 다녀온 건가 싶었다. 저 화려한 공간에 세워진 거대한 왕국은 견고해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얼굴로 그 땅을 밟았다. 한 식탐 하던 나는 오히려 욕심이 과잉되고 포장된 공간을 만났을 때 충돌해 버렸고, 나의 스위트파크는 몰락했다. 좋은 걸 모아놓는다고 더 좋아지는 게 아니었다. 다시 개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자리에 뭐가 새로 생길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스위트파크' 아닙니다.
*가을, 당 땡기고 먹을 것 땡기는 계절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