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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희망, 잔망스러운 글
세상과 낯가리기 - 영화, 책,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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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섬뜩하고 비틀린 장인 정신에 관한 세 편의 영화
- '선'을 넘게 되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들에겐 다 계획이, 이유가 있어요. 완벽한 미에 대한 극한의 추구. 1mm도 어긋나면 안 되는 숨 막히도록 정교한 세계. 그들은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각 분야의 대가들, 장인들입니다. 예술의 정점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 나아가 다른 사람들의 희생까지도 서슴지 않아요. 그것조차 예술의 한 부분이 될 테니까요.
늦여름 밤에 서늘하게 볼 수 있는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장인 정신이 집착으로 변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경계선은 어디쯤일지 영화를 통해 가늠해 보게될 겁니다. 사람을 위한 예술이 동시에 사람을 괴롭게 한다는 모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3명의 예술가들을 보고나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처음엔 정상인의 범주에 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경계선을 넘게 되는 인물들에 대해서요. 과도한 완벽주의는 자신 또는 타인을 파괴한다는 주제 의식을 공유하게 됩니다. 그 중간의 경계를 지켜가는 게 장인과 우리의 과제일 겁니다. 우리는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걸 잘 만들고 싶다는 점에서 모두 각자의 장인이기도 하니까요. (내 인생의 장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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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Curation
<팬텀 스레드> (2018)
아름다운 바늘에 찔리는 상처
매번 다른 세계를 선보이는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의 우아한 작품. 우드콕의 디자이너 레이놀즈는 영국 왕실과 부유층의 드레스를 만든다. 정확히 치수를 계산하고 곡선을 살리는 아름다운 옷들을 짓는 그. 자신의 작품을 목숨처럼 아끼며 자부심을 갖는 유형이다. 새로 사귀게 된 젊고 아름다운 여인 ‘알마’는 레이놀즈를 만나며 처음엔 행복해한다. 그가 만드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어보기도 하고, 그와 사는 저택의 문법과 분위기에 취하고 만다. 한편 예술에 대한 레이놀즈의 집착이 심해지면서 알마는 점점 알게 된다. 그가 얼마나 강해 보이면서도 깨지기 쉬운 사람인지, 완벽주의가 그를 어떻게 죽이고 있는지를. 그녀는 그의 아름다운 바늘, 혹은 부속품 같은 관계성에서 벗어나 끝내 그를 파괴하고 싶어 한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뮤즈이자 그를 파괴하는 예술과도 같다.
잔잔한 클래식 선율은 이 둘의 묘한 분위기를 살려준다. 고풍스러운 저택과 드레스 장면들이 영상미를 더한다. 온통 장인 정신으로 수놓아진 영화를 보며 당신은 공허함과 서늘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팬텀 스레드’라는 제목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미스테리한 영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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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메뉴> (2022)
나와 타인을 희생하여 예술이 되다
반전형 스릴러 영화 <더메뉴>. 젊은 커플이 셰프 슬로윅의 특별 만찬에 참석하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외딴섬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선 손님들 앞에 코스 요리가 하나씩 놓여진다. 그 요리들은 하나같이 파격적이고 재료에 대한 요리사의 집착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빌런인 셰프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심취한 나머지 모두를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려 한다. 단순히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순수한 행동이라는 지점이 기괴하다.
영화엔 커플 말고도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나오는데, 스타트업 대표 친구들 그룹, 노부부, 미식가들, 한물간 영화배우와 연인 등이다.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것도 재미 요소 중 하나. 고정관념을 벗어난 다양하고 독특한 요리들도 영화에 기묘한 품격을 더한다. 예술에 대한 집착은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지, 그 공허함을 어떻게 채울지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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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시> (2023)
예술에 대한 집념으로 절교까지
여기, 음악에 대한 장인 정신(과 약간의 변덕, 괴짜 기질)으로 친구와 절교까지 하는 남자가 있다. 아일랜드 섬마을 이니셰린에 사는 ‘콜름’에겐 절친 ‘파우릭’이 있다. 어느날, 하루아침에 콜름은 파우릭에게 절교 선언을 한다. 이제 시시껄렁한 잡담할 시간이 없고, 네가 싫어졌다고. 납득하지 못하는 파우릭은 친구에게 계속 매달리지만 결국 콜름은 바이올린, 음악 작곡에 집중하고 싶다고 한다.
예술에 대한 그의 집념은 세속의 삶과 인간관계에도 흥미를 잃게 한 듯 보인다. 콜름은 계속 연을 끊으려 하고, 파우릭은 계속 집착하고… 끝을 보고 마는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스포에 주의하면서 보자)
영화는 예술에 대한 집념, 우정 사이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집념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시킬 것인지,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끊어내는 게 맞을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은 끝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지.
+ 예술과 우정 말고도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한 보물같은 영화. 각본 천재 마틴 맥도나 (Martin McDonagh)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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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 essay
영화 속 사투리
아일랜드 배경의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영화 자체도 훌륭했지만, 아일랜드 억양이 자꾸 귀에 남는다. 영어 자막으로 봐서 더 인상적이었나보다. ‘Hey’ 대신 ‘Aye’로 상대를 부르고, ‘Got you’ 대신 ‘Got ya’, ‘ye’로 지칭한다. ‘Fuck’ 대신 ‘Feck’을 하고 ‘~~, like’ 같이 말끝마다 like를 붙여댄다. 너무 새롭고 신기하잖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재미있는 체험이다. 영어도 아직 잘 못하는데 영어 액센트를 공부하고 싶어질 만큼. (아무래도 영어 표준어 공부가 지겨워졌나 보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아일랜드 사투리를 영어, 심지어 한국어와도 섞어 썼다. “너 머리 이상해, like.” “Aye, 오늘 언제 와?”… 표준어와 다른 뉘앙스, 억양, 말투를 발견하는 건 신비롭다. 한국에서라면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할머니들을 볼 때의 느낌이다. 알아듣기 힘든 단어들을 내가 아는 단어들과 열심히 비교하며 유추해 내는 행위의 낯섦. 옛 고어들을 없애버리지 않고 남겨둔 귀한 마음들을 생각한다.
왜 영화 속 사투리가 신비롭게 느껴질까? 일단 배우들과 대본이 옛 사투리를 구현하는 것 자체가 신비롭다. 대사를 자기 말투에 입히기 위해서 맹연습했을 비하인드 씬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스토리와 합쳐져서 자연스럽게 몰입되어서 타임머신을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다. 사투리는 역사 그 자체다. 1920년대 아일랜드 사람들이 부모에게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을 오래된 말투. 표준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달했을 그 사고체계와 성격들. 시골에서 그들끼리 사용하며 굳혀진 단어들이 순박하고 다채로워 그 땅에서 자라는 나물 같다. 세련되지 못해도, 그게 작품 분위기와 맞을 때 슴슴한 시너지가 난다. 이런 사투리들이 콘텐츠에 많이들 등장하면 좋겠다. 자막은 필요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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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al updates
요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때문에 다들 속상한 마음이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일본과 한국의 친일파들이 제발 정신 좀 차리면 좋겠습니다...! (그럴 일이 없지만)
오염수는 7개월 안에 한국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64개 핵종이 녹아든 방사능 오염수가 오는 것이죠. '환경보호'라는 전지구 조별과제에 제 역할은 커녕 똥을 싸고 있으니 열받고 힘이 빠져요. 그래도 일반 시민인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은 하려고 합니다. 투표도 잘 합시다!
💥해양투기 반대서명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 기사
삼중수소가 인체에 축적되면 정상적인 수소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삼중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 '핵종 전환'이 일어남. DNA에서 핵종 전환이 발생하면 유전자가 변형되고 세포를 파괴해 각종 암을 유발하거나 생식기능을 저하시킨다.
https://www.bbc.com/korean/news-56672262
*제주의 바다 못 잃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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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BGM
오늘 소개했던 <팬텀스레드>의 우아한 사운드 트랙이예요. 듣기만 해도 유럽풍 저택에서 드레스를 찰랑거리며 걷는 장면이 떠올라요. 그 발걸음도 사뿐사뿐 피아노 선율처럼 들려옵니다. 2018 김연아 아이스쇼 갈라 프로그램 선정곡으로도 유명하고, 영국의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가 작곡했다고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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