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수영을 못하는 인어
어릴 때 나는 상상 속 존재에 빠지곤 했는데, 그중 하나는 인어였다. 처음 인어공주 동화책을 읽었을 때, 내게 인어란 인간과 너무나 다른 족속으로 보였다. 사람과 물고기의 중간 존재가 있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아름다운 존재를 발견한 기쁨이 더 컸다. 인어에 관한 책과 기담을 몇 개 읽고는 덴마크에 있다는 인어 조각상을 나중에 꼭 갈 곳으로 정해두었다. 8살이던 나의 인생 영화 또한 디즈니 <인어공주> 였다. 영화 속 인어는 물속에서 유연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인간은 많이 걸으면 힘들지만, 인어는 그런 인간을 보고 비웃고는 지느러미를 뽐내며 지나갈 것이었다. 아마도, 영원히 이동에 힘을 들이지 않을 존재. 물이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도 모르고 가볍게 춤추는 존재. 도대체 왜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길 소원할까? 이해가 안 됐다. 생활 터전이 물 속이면 자유롭고 신날 텐데, 손발이 퉁퉁 불어 터지지 않는다면야 계속 있을 텐데.
수영학원에 등록한 나는 절실하게, 물을 좋아하고 싶었다. 인어를 좋아하는 애니까, 그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고 싶으니까. 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겨내야만 했다. 그게 나의 정체성 중 하나를 완성해 줄 퍼즐 조각 하나인 것처럼, 수영을 하게 되면 뭔가 근사한 일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어른들도 나를 인어공주 같다며 칭찬해 줄 것이다. 이런 나의 바람이 클수록 물은 내게서 달아나는 듯했다. 그 속은 언제나 차갑고 무서웠고, 수영장 물에서는 약품 소독 냄새와 비릿한 인간의 냄새만 났다. 바다는 더 겁났는데, 물맛은 짜고 파도는 나를 내동댕이치려 했다. 당시 나는 수영장에서 애들이 발장구만 쳐도 울 정도로 물방울이 튀는 것을 싫어했다. 호흡도 잘 못하니 물을 많이도 먹었고 그때마다 목이 칼칼해지는 게 괴로웠다. 수영이 결코 좋아지지 않은 채로 1달 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현실의 나는 인어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수영을 못하지만, 물을 덜 무서워하게 됐다. 그때의 어린 소녀가 아니라고, 다 컸으니 물에서 놀 수 있다고 되새기며 계속 뛰어들다 보니 천천히 익숙해졌다. 물에 발가락을 넣을 때 굳어버리던 몸도 조금씩 풀려간다. 요즘은 아예 주 1회씩 수영장을 다닌다. 생초보인 주제에 강습도 안 받고 꼬물꼬물 움직여 보는 중이다. 오늘은 수영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1번 완주를 해냈다. 원래 수영을 못할수록 요란하게 난리를 치면서 하는 법인데, 내가 바로 그렇다. 호흡이 짧아 물속에 오래 있지도 못하면서 어찌나 물을 많이 튀겨대는지. 세찬 물세례와 거친 물소리에 반경 5m 내로는 아무도 접근 못 할 것이다. 아마도 숭할 내 꼴에 물가에 있는 가드 직원분과 눈이 마주칠 때면 바로 물 속에 숨어버린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입꼬리를 올리게 되는데, 수영을 하면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못해도 즐거운데 잘하게 되면 얼마나 즐거울까? 기대감도 같이 물에 녹아들어 같이 수영한다.
내가 수영보다 더 좋아하는 놀이는 고요히 물속에 있는 거다. 잠깐 호흡을 들이마시고 몸에 반동을 준 다음 물에 깊이 파고들기. ‘잠겨 든다’ 고 해야 맞겠다. 잠겨있다가 다른 사람의 몸이 보이면 시선을 피해주기 위해 다른 쪽 물결에 시선을 돌린다. 물이 수영장 벽에 드리우는 결을 자세히 본다. 실제로는 색이 없을 테지만 내 눈에 파랗게 보이는 물속으로 햇살이 스며들어 나른해진다. 조금씩 움직여 보면 그 햇살이 기포와 함께 요동치고, 그 위로 숨을 뱉는 물방울과 꿀렁대는 소리가 음악같이 들린다. 물의 세계에서 음표는 물방울로 치환된다. 그 움직임과 멜로디는 미세해서 이렇게 물로 들어온 사람만 듣고 감각할 수 있다. 수면 위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살살 쓸어보면 물 밖에서 표면을 만질 때와 시공간이 뒤바뀐 느낌을 주는 게 매번 새롭다. 지구 안으로 들어가 우주의 표면을 만지는 기분이다.
10살 이후로 인어를 생각한 적이 딱히 없었는데, 수영하는 날엔 다시금 인어를 불러와 상상하게 된다. 상상은 물과 만나서 부피를 불리고 내 손가락 사이로 금가루가 차르르 흐르듯 지나간다. 묵직하면서 부드러운 물결이 감기는 느낌에 나는 다른 세계로 한없이 유영한다. 그 세계는 인어와 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하다. 어려서 물을 좋아하지 못했던 나를 불러와 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 이상, 1분도 물속에서 못 버티고 물안경 없이는 눈도 못 뜨는 인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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