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하루살이 전단지 알바생 체험
대학교 1학년, 21살의 여름 방학이 왔다. 2달이나 퍼질러져 있는 방학을 즐기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단기 알바를 물색했다. 용돈은 내 힘으로 벌고 싶기도, 부모가 떠밀기도 했다. 첫 알바는 어느 고급 샤브샤브집이었다. 이런 좋은 식당은 직원 밥도 좋겠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건만, 점심시간이 되자 웬걸 나는 주차장으로 끌려갔다. 어둑한 주차장 구석에 덩그러니 의자들이 놓여있고 거기서 밥을 먹으라고 주는데, 흰 쌀밥에 비빔 간장이 전부였다. 다른 동료들은 일상적인 풍경처럼 밥을 퍼서 간장을 비벼 먹고 있었다. 뜨악해진 나는 그길로 하루 만에 관두었다.
두 번째 알바는 프랜차이즈 카페였다. 출근 첫날 유니폼을 입고 들떠서 슬쩍 사진도 찍었다. 오전 내내 점장에게 일을 배웠는데, 손이 빠릿하지 않았는지 다음날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다. 도망치듯 쫓겨나며 직원에게 무료 제공되는 커피 1잔은 갖고 나왔다. 커피 맛이 고소해서 탄 원두처럼 속이 씁쓸해졌다. 과연 내 일손을 원하는 곳이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자꾸 하루 만에 관두다 보니 다음 알바를 구하기가 두려워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루살이 알바생’으로 살자. 일일 알바라도 계속하면 어떻게든 돈은 벌리겠지. 그렇게 기존 알바생들의 하루를 ‘땜빵’ 해주는 인재가 되었다. 콜센터로, 옷 가게로, 학원으로. 아무리 힘든 알바여도 나는 믿을 구석이 있었다. 이 일도 오늘이 끝이라고 생각하면 되었다.
한번은 신발 가게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게 됐다. 아침 8시까지 가게 앞으로 갔더니 알바 대여섯 명이 모여있었다. 오픈 기념행사 전단지를 돌리는 미션이었다. 남녀 구분도 없이 벙벙한 유니폼을 입고는, 조를 짜서 흩어졌다. 나는 현과 짝이 되었다. 그는 30대 남자로, 촌스럽고 낡은 빵모자를 썼다. 이빨 몇 개가 빠진 채 헤죽 웃는 인상도 특유의 낡은 냄새도 거부감이 들었다. 다른 조는 또래 여자끼리 짝지어서 재밌어 보이던데. 초등학생 때 인기 없는 남자애와 짝이 되어 다른 애들을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현은 처음 본 내게 반말도 했다.
“반가워. 나는 전단지 알바만 3년째 하고 있어.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궁금한 것도 없어서 떨떠름하게 인사하고는 전단지 할당량을 한가득 들었다. 현의 위치 선정 노하우를 따라 지하철역 근처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하루 7시간을 전단지만 돌렸다. 몇 백장을 한 뭉터기씩 가져온 후 소진하면 다시 몇백 장을 가져와서 돌렸다. 몸이 힘들다기보다 눈치가 많이 보이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종일 살피고 있어야 했다.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일지, 저 사람 관상이 어떤지, 사람이 많이 지나갈 위치가 어디일지. 행인들의 얼굴을 이렇게 집중적으로 본 건 처음이었는데, 웃는 낯은 드물었다. 다들 무표정하거나 찡그린 얼굴이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누군가 말 걸세라 부리나케 걷는 사람들.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인파가 지하철 아래로 쓸려 내려가고 또 올라왔다. 흐르는 물결처럼, 혈관의 적혈구처럼 교차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길가에 뿌리를 내린 채 전단지 배포를 개시했다. 조심스레 건네는 게 나은지 확 박력 있게 건네는 게 나은지 전달 성공 확률을 가늠해 보며. 부들대는 소심한 손은 세찬 발걸음들에 묻히곤 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의기소침해졌다. 오전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점심엔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왔다. 근처 빌딩 계단에 앉으니 현이 다가와서 나란히 걸터앉았다.
“어때? 할만해?”
“네… 되게 안 받아주네요.”
“그치. 몇 년을 해도 대부분 잘 안 받더라. 내가 요령 알려줄까?”
“요령이 있어요?”
“누구랑 같이 있는 사람을 공략해 봐. 지인 눈치 보여서라도 받아주는 경우가 있으니까.”
“오… 그것밖에 없어요?”
오후 시간은 더 안 갔다. 여전히 받아주는 사람은 한 시간에 몇 명 있을까 말까 했다. 받고서 바로 내 눈앞에서 버리거나 찢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저럴거면 왜 받는거지? 골목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고 거절 받는 경험. 낮게 깔아보는 무시의 눈빛들. 온 생애 받을 거절과 민망함을 그날 하루 다 받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냉대에 내 마음은 구겨진 전단지처럼 너덜너덜해졌다. 그러다 한 사람이 간혹 받아주면 그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이건 일종의 감정 노동이었다.
5시간쯤 지났을까, 여전히 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으며 “새로 오픈했어요. 다음에 들러주세요.” 살갑게 말을 걸었다. 3년을 하면 저런 경지가 되는 걸까? 그는 틈틈이 나랑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었다. 겉모습만 보고 꺼렸던 게 미안해져 짐짓 말을 걸었다.
“이거 하면 마음이 힘들지 않아요?”
“힘들지. 그래도 일을 한다는 게 어디야.”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요?”
“난 고졸이라 취업도 잘 안 되고, 이것도 계속하면 나쁘지 않아.”
“뭐가 좋은데요?”
“사람 구경하는 것도 좋고. 일은 똑같아도 매일 하나씩은 재미가 있더라구.”
현은 무해하게 웃었다. 거절을 한 번도 안 당한 사람처럼. 저렇게까지 알바에 진심일 일인가? 그 지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낙관이 신기했다. 그는 알바 플랫폼, 또는 직업소개소로 일을 구한다고 했다. 단기로, 또 장기로 매일같이 종이를 나눠주는 사람. 그의 종이엔 뭔가가 있다. 그 위에 얹어주는 기운 같은 것. 행인이 받아주는 확률이 나보다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전단지 알바가 끝나니 저녁 어스름께였다. 다시 모일 일 없는 여섯 명의 알바생들은 집으로 흩어졌다. 헤어지면서 현에게 손을 오래 흔들었다. 그 이빨 빠진 웃음이 노을 속으로 멀어졌다. 나는 노곤해져서 지하철 인파 사이로 녹아들었는데, 아까는 차갑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이 누그러진 듯 보였다. 방학이 끝나고는 바로 학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그다음 방학에는 과외와 학원 조교 같은 장기 알바를 하게 됐다. 나는 하루살이 신세를 청산하면서 금방 현을 잊었다.
지금도 전단지를 돌리는 분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이런 디지털 세상에 종이 전단지가 웬 말이냐 자원 낭비다 속으로 불평은 하지만 일단 내 앞에서 사람이 주는 거니까. 길을 돌아가서라도 받아오고, 고이 접어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버린다. 몰려드는 빼곡한 거절 속에서 내미는 손길이 1초라도 위안이 될까 싶어서. 물론 현을 다시 볼 일은 없었다. 30대 청년이자 알바 전문가, 어떤 부분에서 달관한 듯한 말투. 그러고 보면 전단지의 신령 같기도 하다. 전국 어디든 전단지가 있는 곳엔 그가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 그날 보고 말 사이인 동료들의 미소가 되어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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